베일리 문화생활

[독서] 덕후 필독서, 덕업 일치의 교과서. 아무튼, 아이돌 by 윤혜은

데일리 베일리 2022. 3. 15. 21:03

제주도 여행을 하며 우연히 들른 책방 '아베끄'에서 구입한 '아무튼, 아이돌'

오랜만에 찾아온 본진이라는 따뜻한 보금자리를 맞아, 아이돌이라는 제목의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배꼽잡는 필력 & 덕후판...그 길티 플레저에 대하여.

 

1. 책의 첫인상

가볍고, 작아서 지하철에서 읽기 딱...이라고 생각했는데

90년대 월간 만화책 like밍크^^와 같은 표지+ "또 사랑에 빠져버린거니?"라는 부제는 예쁜 북커버의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출근길 지하철에서 몽스탁스 뮤비를 보면서 실없이 웃으면서 새삼스레 사회적 체면을 챙길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다가 지하철 창에 실실웃고 있는 나를 보았던;;

2. 책의 감상

보통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터라 밑줄이나 플래그는 어렵고 좋은 구절이 보이면 책 귀퉁이를 접는 편인데, 책의 전반부는 정말... 모조리 귀퉁이를 리트리버 귀처럼 접어 버렸다... 덕메이트들의 일기, 카톡, 혹은 트위터 멘션을 보는 느낌이었다. 한줄한줄 주옥같은 감정 표현과 상황 묘사에 홀린 듯이 책장을 넘기며 귀퉁이를 접어 나갔다. 

'000이 누구야?' '베일리한테 물어봐~'/ 아이돌 박애주의자였던 나를 보는 것 같았던....
덕메들에게 보여줬더니, 손발이 차가워 지는 팬싸에 실제로 온 것 같다고 했다.

3. 총 정리

데뷔팬, 아이돌 박애주의자, 늦덕의 길을 꾸준히 걸어 케이팝 판에 참여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다. 다만, 바람잘날 없는 케이팝 판에 발가락이라도 담궈본 사람 중 사회적 이슈와 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도, 덕질을 하면서도 늘 어딘가 무거운 마음을 떨치지 못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나는 그 해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다. 

 

과연, 내가 사랑에 빠져도 되는 걸까? 내 사랑은 무책임한 사랑은 아닐까? 

 

이 책에서 나는 그 짐을 조금 나눠주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래, 나는 왜 나의 사랑을 비난하려 했을까? 나의 사랑을 누더기로 만든 건 내 사랑을 책임감있게 받지 못한 그 사람의 탓인데.

나는 왜 그를 대신해서 부끄러워할 구실을 찾고 있는 걸까.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더는 부끄러움 마저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수치와 후회, 반성과 성찰은 모두 팬이 아닌 그들이 감당해야할 몫임을 정확히 인지하기로 했다.

 

나는 씁쓸하게 마음 단속을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나를 좀 더 인정하고 홀가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다. 맘껏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축소된 것 만은 복구할 길 없어 아쉬움이 남겠지.

 

아무튼, 아이돌에서

 

아아..껍데기만 남고 알멩이는 가라...!

 

하지만, 과연 이것으로 모든 짐이 가벼워졌냐고 한다면 아니었다. 나에게는 이보다 더 큰 짐이 있었다.

과거를 애도하고, 미래를 희망하기 위해서는 나에겐 아주 많은 새로운 지금들이 필요할 테다. 바라건대, 그 길에는 더는 어떤 여성도 제 존재가 함부로 모욕당하거나 거부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발화점이 내가 사랑해온 아이돌 세계에서라면 더더욱 말이다. 내가 여성 아이돌들의 가려진 외로움까지 쓰다듬을 수는 없겠지만, 투쟁이 필요하다면 그 목소리만은 쓸쓸하지 않도록 힘을 더할 것이다.

 

아무튼, 아이돌에서

자 이제 조금 가벼워졌다. 좋아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가자. 더 사랑하고 즐기고 목소리를 높이자.

 

P.S. 인스타그램에 짤막한 감상을 올렸더니 작가님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다. 따숩고도 사려깊은 댓글에...치여버렸다....